고등학교때 까지는 술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것이 없었다..
1년에 마시는 술이라고 해봐야 명절에 제사지내면서 마시는 한두잔 정도의 술..
막연히 쓰게만 느껴지고 시간지나면 머리 아픈 이런걸 왜 마시지?
생각했지만..
대부분이 그렇듯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아무 이유도 없이 '마시자'가 되버리고..
술맛은 이런거다라는 것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혹은 술자리를 위한 수단으로 술을 마시게 된다..
...
TV에서 보면 실연의 충격을 당해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단칸방 안에서 소주병하나 있고, 무서운건 안주나 잔도 없이, 막연히 술만 마시는 모습만 그려진다..
그래서, 술은 저런 용도로도 마시는 구나 하는 생각도 했던거 같다..
...
제대를 하고 다시 사회로 복귀했을때 느껴지는 술은..
나름 술도 그때그때마다 맛이 다르고, 상황이 더욱 절실할때 술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크다는거..
막연한 걱정과 공포는 술맛을 더욱 달게 만든다..
...
그러고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의 시작..
학교 다닐때랑은 조금 다른 모양들이 그려진다..
그동안은 단순히 같은 또래의 애들끼리 마시는 먹고 놀자 판이었지만..
지금의 판은,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고, 어버지뻘 되는 회사 동료도 있는, 계층이 다양한 사람들과 마시게 된다..
기분 좋아라고 마시는 술이지만, 회식이라는건 엄연히 회사 생활의 연장이고..
이자리에서 실수는 가끔 치명적이 결과를 야기하기도 하고, 눈치껏 술에대한 적절한 컨트롤이 필요한 시기 이기도 하다..
...
아무튼..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제약적인 회식이라는 분위기가 싫어서 인지는 몰라도..
집안에서 혼자 야금야금 술을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원룸 자취 2년째..
매일매일 회사일을 마치고 늦은 시각에 들어오는 사각의 방, 그리고 반복되는 혼자라는 상황이..
어느 순간 너무 힘들게 느껴지더라..
처음의 시도는 '그냥 마셔봤어' 에서 시작되었지만..
칠흙같은 어둠과, 깊은 침묵과, TV나 PC 모니터랑 대화하며 마시는 술이 언제 부턴가 술자리의 친구들과 마시는 술보다 더욱 좋게 느껴지더라..
미국에서 생활하고 돌아온 어떤 분이 나에게 예기한다..
미국에서 차지하는 대부분의 알콜 중독자이 알콜 중독으로 빠져드는 루트가 (독신 + 사회생활)의 스트레스에서 시작된다고..
예기가 맞다면 나는 알콜중독으로 가는 첫번째 관문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최근..
칠레산 와인을 한병 훌쩍 마시고 심하게 고생을 한적이 있다.. (윗 사진에선 빠졌음..ㅋ)
극도로 몸이 좋지않고, 혼미한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결론은 하나였다..
과거에 어떤 아픈 기억이 있었고, 수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무슨 수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 다는거..
그래서 그 기억을 지우고자 지금까지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현실의 고통을 지우는 진통제로 술을 마셔왔다는 거..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하나쯤은 있을것이고, 술을 마실때면 그 기억이 조금은 떠오를 거라 본다..
아무튼..
진통제로 마셔왔던 술은, 지우고 싶은 기억을 더더욱 선명하게 머리속에 각인 시켜주는 약이 아닌 독이었던거 같다..
사진에서도 보여지듯 우리집 전망이 탁 트여있다..
가끔 비오는 날이나, 술시고 정신이 혼미한 날은 나도 모르게 상당히 sensitive 해진다..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간 저 바깥 풍경속으로 뛰어들지도 모를거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제부터 집에서,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하였다..
술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29살이 되고서야 이걸 알았네..
물론 같이 마실 사람 있으면 고민없이 마심.. 단지 혼자 먹는 술은 정신의 병을 키우는 것이라고..
예기하고 싶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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